양자 네트워크

 

“생일 축하한다!”

차의물의 아버지가 막 퇴근하고 돌아와 거실 한쪽에 큰 박스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중학생인 의물은 방에 있다가 문을 열고 나와 고개만 까딱하며 아버지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곧바로 박스에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큰 선물은 받아본 적이 없기에 수상함을 느꼈다. 아니, 생일이라고 선물을 받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사실 그건 어머니의 특별한 부탁이었다. 중2병으로 부모, 특히 아버지와는 말도 잘 하지 않고 학교 공부에만 열중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어머니의 결정이었다. 퇴근한 아버지를 맞이하러 주방에서 거실로 나온 어머니는 의물의 환한 표정이 마냥 기뻤다.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간 사이, 의물은 큰 가위를 가져와 박스를 급하게 해체했다. 그 안에는 8인치 반사망원경 부품이 들어 있었다.

​“너무 책만 보지 말고 가끔 하늘도 보렴.”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의물은 어색하게 웃더니 저녁 먹기 전까지 내내 거실 바닥에 앉아 망원경을 조립했다. 옆에서 아버지가 함께 도와주었고, 설명서를 보면서 의물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의물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제약 회사를 물려받아 운영해왔다. 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에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자’라는 목표로 세워진 회사는 2대째인 아버지 때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회사는 그 이윤을 바탕으로 여러 교육 사업을 전개했고 기초과학 연구소도 설립했다.

​늘 바빴던 아버지에 의물은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맘속으론 불만이 쌓여있었다. 가족끼리 한 번도 여행다운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어떤 의미 있는 날이었는지 모르지만,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북한산 계곡에 한 번 놀러 갔던 것이 기억나는 것 중엔 유일한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의물은 방에서 혼자 책을 보는 일에서 재미를 찾았다. 명작동화, 공룡, 동식물 분야는 이미 초등 시절에 다 뗐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관심사가 판타지, 모험, 추리 분야로 점점 확장됐다. 그러다 위인전, 역사, 과학 분야에 이제 막 흥미를 느껴가고 있던 터였다.

​망원경 조립을 마친 의물은 곧바로 망원경의 신비함에 빠져들었다. 8인치 구경은 꽤 크고 근사하게 보였다. 마침 주말을 앞둔 그 날은 달이 뜨지 않아 어두웠고, 공기도 맑아서 밤하늘을 관찰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의물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2층 자기 방 발코니로 망원경을 낑낑거리며 간신히 가지고 나갔다. 그곳에서 서툴지만, 조작법을 익히며 밤하늘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그렇게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바라보다 그만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아버지는 발코니에서 밤을 새워버린 의물을 보며, 어릴 적부터 늘 느껴왔던 것이지만 새삼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30년 후 –

 

차의물은 한 재단이 주최한 아이디어 공모전의 시상자로 참석했다. 그곳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던 회사가 운영하는 재단이었다. 수십 년간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 기초과학 연구소를 이끌어 온 그는, 아버지로부터 망원경을 선물 받았던 과거 자신의 나이 또래 수상자들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그 친구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좋은 말들을 많이 해줄 수 있게 되어 상을 탄 학생들 못지않게 그 자신도 기뻤다.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가볍게 불어 시원하고 맑은 날이었다. 의물은 오랜만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따뜻한 추억에 잠겼다.

​의물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다 기초과학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재정이 튼튼했던 덕분에 의물은 그곳에서 자신만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가 주로 연구한 것은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한 양자 통신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이렇다 할 연구 실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실험실에 홀로 앉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떠나간 연구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날이 늘어났다. 자신의 연구가 과연 쓸모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그 길을 걸어야 할지 끝없는 고민에 휩싸였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 의물은 실험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에 익숙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을 주는 것은 고양이 톤토였다. 언젠가 거리에서 뒤를 졸졸 쫓아와 하는 수 없이 데려다 키우게 된 톤토는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 천상 순한 고양이였다.

​어느 날 실험실에 혼자 남은 의물이 톤토에게 밥을 주며 지켜보고 있는데, 중국 국가항천국에서 일하는 동료 대소에게 연락이 왔다.

​“흥미로운 게 있어서 말이야. 의물 씨한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뭔데?”

​“우리 우주탐사선이 운항 중에 빛이 특정 지점을 통과할 때 속도가 미세하게 변하며 중력장이 기묘하게 뒤틀리는 현상을 발견했어.”

​“그게 뭔데?“

​”행성 간 자기장 흐름과는 다른 건데, 정확히는 몰라.“

​“검증은?”​

“여러 차례 해봤어. 데이터가 의미 있어.”

​“위치는?”

​“처음 발견됐을 때 지구와 화성 사이 황도면의 L4 라그랑주점 근처였다고 하더군. 다만 그 지점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해. 내가 책임자는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흥미롭지 않나?”

​“언제 나타났지?”

​“발견은 4일쯤 됐다는 것 같아. 아직 다른 나라에서도 보고되지 않았어. 이미 알았을 수도 있지만……”

​의물은 그 말에 흥미를 느꼈으나, 대소는 자신과 함께 연구소를 지키기로 약속했다가 몇 년 전 전 거액의 연봉 유혹을 못 이기고 중국에 스카우트 되어 떠난 친구였다. 배신감에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순진하고 약간 오타쿠 같은 면도 있어서 절연하지는 못하고 그가 하는 얘기만 겨우 들어주는 정도의 친밀감을 유지하고 있던 터였다.

​“알았어. 근데 이런 통화 괜찮은가? 비화폰도 아니고.”

​“어, 어, 그런가……”

​글쎄 이렇다니까! 의물은 픽 한번 웃고는 잘 지내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우연히 모니터 옆에 붙여놓은 어린 시절 사진으로 시선이 갔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북한산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찍은 그 사진은 부모님이 모두 떠난 지금 언제나 자신을 다독여 주고 용기를 주는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날 의물의 인생을 바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의물이 다용도실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을 때, 실험실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양자 통신 장비에서 사고가 터졌다. 장비 근처를 돌아다니던 고양이 톤토가 송신 장치의 열린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그만 그 작은 발로 전송 버튼을 누르고 만 것이다.

​그 순간, 짧은 섬광이 일어났고 자기장 교란으로 모든 전자기기가 순간적으로 먹통이 되었다가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놀라 장비 앞으로 뛰어온 의물은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점검 결과 장비의 기능엔 이상 없었지만, 함께 있던 고양이 톤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톤토! 톤토!”

​아무리 불러도 톤토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의물은 실험실 CCTV를 확인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영상 속에서 고양이 톤토가 송신 장치의 틈 안으로 들어가면서 잘못 누른 버튼에 예민한 기기가 오작동했고, 그 순간 톤토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장면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신부 장치 안에 톤토는 없었다. 저장된 기록을 살펴보자 톤토의 작은 깃털 하나에 대한 양자 정보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마저도 불완전한 DNA 배열이었다. 결합 방식이 기존 물질과 미세하게 달랐다. 나머지 정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톤토의 양자 정보와 수신 장치 사이의 양자 얽힘이 파괴되면서 남겨진 잔해였다. 불완전하지만 대용량 양자 전송이 성공했다고 판단되자 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의물에게 희열과 동시에 압박감이 찾아왔다. 그동안의 실험에서는 광자 한두 개 정도의 단위에서만 성공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양이라는 방대한 원자 정보가 극히 적은 에너지만으로 복사, 전송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은 소실돼버렸지만 말이다.

​사라진 톤토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의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밤새 실험을 계속했다.

​두 광자를 생성한 후 곧바로 송신 장치와 수신 장치에 두고 광자 하나를 송신 장치의 광자와 얽히게 만든 뒤 측정 데이터를 수신부로 보냈다. 조건을 다르게 하고 개수를 조절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양자 얽힘을 이용한 순간이동 실험을 할 때,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미세한 오류와 노이즈가 발생했다. 기존의 실험 결과와 같았지만 기기 자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먹통은 왜 됐던 거지? 톤토는 어디로 간 거지?”

​의물은 고양이가 사라지는 CCTV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섬광과 함께 잠깐의 정전이 있고 난 뒤 불이 다시 들어왔을 때 송신 장치의 톤토는 사라진 뒤였다. 외부 배터리 팩으로 CCTV 녹화는 끊기지 않았기에 찰나의 공백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톤토가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가버리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분명히 고양이는 측정과 동시에 파괴되어 사라진 것이다.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톤토가 실험실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혹은 송신 장치 내에서 실제로 사라진 것. 의물이 꼼꼼하게 실험실 내부를 살펴봤지만 톤토는 어디에도 숨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실제 사라진 것이다. 송신 장치의 어떤 순간적인 결함에 의해 스캔과 동시에 고양이는 사라졌고 수신 장치에서는 어떤 방해로 인해 얽힘이 풀리면서 재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몇 차례 계속 실험해봤지만 스캔한 정보가 얽힘을 이용해 수신 장치의 입자에 복사될 때 늘 얽힘이 파괴되며 미세한 오류가 있었고, 그것은 전송할 양자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더 심해졌다. 의물은 지쳤다. 그리고 밤샘 작업 끝에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날 의물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동료 연구원들이 그를 둘러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 이거 민망하게…… 일들 하세요.” 의물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의물은 화장실에서 얼굴을 세차게 씻은 뒤 다시 실험실로 돌아왔다. 후배 지은이 책상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왜?”

​“최근에 밤샘 작업한 적이 없었잖아요.”

​“우리 일이 뭐 그렇지…… 꼭 일이 있어서 밤을 새우나.”

​“톤토는 어디 있어요?”

​“글쎄…… 문이 열려 있었나…… 나가서 안 들어왔나 봐.”

​지은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의물의 책상 주변을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본 의물이 조용히 불렀다.

​“사실은 말이야. 어제 갑자기 톤토가 순간이동을 했어.”

​“네?”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무형 에너지로 변환된 뒤 자취를 감췄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톤토가 우연히 송신 장치에 들어갔고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동 버튼이 눌러졌어. 그런 뒤 순식간에 사라졌어. 송신부에서도, 수신부에서도 없어.”

​“어떻게 그런 일이……”

​“지은씨, 우리 중요한 발견을 한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무엇 때문인지…… 하지만 가설을 만들어야 할 때야.”

​“기계에 이상이 없다면…… 전송된 건가요?”

​“하지만 이건 광자 단위가 아니라 고양이 한 마리야. 우리는 지금까지 이 실험실에서 광자 두 개 이상의 전송은 성공한 적이 없었어. 불안정한 상태 때문에 늘 오류와 노이즈가 발생했지. 그런데 고양이라는 물리적 입자 덩어리가 불완전하게 복제된 채로 사라졌다는 건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규모 양자 얽힘 파괴 사고가 일어난 거야.”

​“우연일까요? 뭘로 설명하죠? 평소와 다른 환경이 된 건가요? 그게 뭘까요?”

​“장비엔 일시적 오류 이후 정상으로 돌아왔고, 우리 실험실은 그대로 존재해. 유일한 단서가 있다면 작은 깃털 하나에 대한 양자 정보가 수신 장치에서 검출됐다는 점이야.”

​“깃털이요?”

​“응, 그렇지. 물론 불완전한 DNA 배열로 되어 있었고 결합 방식도 기존 물질과 달랐어. 노이즈가 들어간 거야.”

​“정보가 손실되고 오염되고 재구성에 실패한 거군요.”

​“흐음…… 정보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는 절대 사라지지 않아. 에너지가 질량으로,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될 뿐 그 총량은 보존되는 것처럼, 정보 또한 마찬가지지. 따라서, 톤토의 양자 정보가 사라졌다면 그 정보는 어디선가는 반드시 보존되어야 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환되거나 다른 위치로 이동했어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톤토의 입자 덩어리와 양자 정보가 손실되어 어디로 가서 저장됐는가를 알아내는 게 핵심이겠군요.”

​“그렇지. 적어도 우리가 만든 수신부로는 오지 않았어.”

​“혹시 순간적으로 응축된 양자 요동이 일어나 사고를 유발한 것이 아닐까요? 양자 요동은 우주 어디에서나 발생하고 이 실험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양자 요동이라…… 하지만 우리 양자 통신 장비가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 실험한다 해도 자연적인 불확실성 때문에 양자 요동을 제어할 수는 없는 일이야. 정보인 양자 상태가 주변의 다른 입자나 전자기장, 열 등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한 모든 입자의 중첩 상태가 깨지는 것을 막을 길은 없지.”

​“결론은……?”

​“결론은, 톤토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전송의 순간에 어떤 미지의 중력파 같은 외부 조건으로 인해 톤토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에너지로 변환돼 버렸고, 톤토의 양자 정보와 에너지는 수신부에 도달하지 않고 어딘가로 흘러가 버렸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겠어. 그 말은 우리 양자 통신 장비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우주의 어떤 에너지와 순간 접촉한 것으로 해석해야 해. 그래서 그게 뭔지 알아내기 위해 밤을 새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던 지은이 말했다.

​“그 깃털 정보의 노이즈 데이터 저에게 보내줘 보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유일한 단서는 그것뿐이에요.”

​“그래, 부탁할게.”

​의물은 컴퓨터로 여러 번의 실험에서 모인 노이즈 데이터를 포함해 모두 지은의 컴퓨터로 전송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의물이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 지은이 한 장의 프린트물을 가지고 걸어왔다. 프린트물을 의물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패턴이에요.”

​“패턴!”

​“네, 고도로 복잡한 수학적 패턴입니다. 이 노이즈는 무작위적이지 않아요. 동전 던지기에서 스물 세번 연속으로 앞면이 나올 확률보다 낮습니다. 명백히 인공적인 신호예요.”

​“인공적이라……” 의물은 흥분했다.

​“신경망 모델에 입력해 알고리즘을 돌려보니 노이즈 스펙트럼에서 완벽한 프랙털 구조의 기하학적 패턴이 드러났어요.”

​그 말을 듣고 다른 연구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은은 모니터를 통해 실험실 연구자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자료를 띄웠다. 연구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기존에는 나타나지 않던 패턴입니다.” 그중 한 연구원이 외쳤다.

​“프렉탈…… 프렉탈.” 의물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저것은 지적 생명체의 신호인가요?” 다른 연구원이 물었다.

​“아마도!” 지은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좀 더 돌려보겠습니다.”

​그 연구원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지은의 데이터를 전송받아 프로그램에 입히며 분석에 들어갔다. 지은이 연구원들 책상을 돌며 일일이 데이터를 넘겨주고 내용을 설명해줬다.

​한껏 부푼 실험실 분위기를 자제시킨 지은이 조용히 의물에게 다가와 말했다.

​“양자 요동과도 연관이 있어요.”

​“왜 그렇게 추측하지?” 의물이 진정 궁금해서 물었다.

​“양자 요동은 일정한 시공간에서 규칙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데 노이즈는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실험은 불규칙하게 진행됐고 매번 대상도 달랐죠. 그 얘기는 양자 요동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패턴이라는 뜻이에요.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죠.”

​“그렇다면……?”

​그때 마침 실험실에 지은의 중학생 아들 기준이 찾아왔다. 평소 엄마의 연구실에 오고 싶어 했던 아이였다.

​“잠시 쉬도록 하지.”

​의물은 연구소 직원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기준을 맞이했다.

​지은이 약간은 당황스럽게 기준을 맞이한 뒤 다용도실로 가서 과일을 깎고 있는 사이 실험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던 기준이 의물에게 말했다.

​“저건 뭐예요?”

​기준이 가리킨 것은 실험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던 양자 통신 장비였다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망원경.”

​“그게 뭔데요?”

​“양자 정보를 이용한 통신 시스템이야.”

​“정보를 전송하는 거예요?”

​“응?…… 맞아! 정보…… 근데 어떻게 알았지?”

​“과학책을 많이 읽잖아요.” 지은이 과일이 든 접시를 들고 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전부 연결된 거예요?”

​“응? 뭐가?”

​“연결이 돼 있으니까 전송되는 거 아니에요?”

​“아…… 맞아. 우리 우주는 어떤 면에서는 다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지.”

​“어떻게 연결된 거예요?”

​“으음……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우리 우주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데, 그 힘들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을 서로 연결하고, 모든 현상을 만들어내지.”

​“네 가지 힘 말하는 거네요.”

​“그래, 아는구나. 그리고 조금은 특별한 연결도 있어. 양자 얽힘이라는 것인데, 우리는 원자나 광자를 두 개 이상 서로 얽히게 할 수 있거든. 그런 후에 그걸 각각 멀리 떨어뜨려 놓아도 그중 한 입자의 상태가 바뀌면 얽혀있던 다른 입자의 상태는 즉시 바뀌게 돼. 그러니까 이 경우도 눈에 보이지 않게 연결된 셈이지.”

​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 했겠지만,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의물은 기준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동안 뭔가 번뜩이는 게 있었다. 아직 그게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그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지은이 실험실에 들어오자 의물이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여기서 주무신 거예요?”

​“아니야.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 왔어.”

​“그렇군요.”

​지은이 자신의 책상 앞에서 의자를 한번 빙그르르 돌리더니 탁하고 잡은 뒤 자리에 앉았다. 그걸 보고 의물이 결심한 듯 말했다.

​“그보다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어.”

​“그게 뭔데요?”

​“코드!”

​“코드요?”

​“이진 코드로 수만 개 정도 추출이 가능해.”

​“노이즈에 숨은 코드가 있었다는 거죠?”

​“응…… 위치 정보 코드 내지는 접속 코드가 분명해.”

​의물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지은의 의견대로 그 패턴은 양자 요동과 맞춤형으로 되어 양자 요동의 영향으로부터 정보를 보호하는 일종의 ‘양자 오류 수정 코드’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양자 통신을 방해하는 요소였던 양자 요동을 오히려 정보 전달의 일부로 활용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니까 양자 얽힘의 수신 장치로는 양자 요동의 자연적인 불확실성 때문에 얽힘이 깨지면서 다량의 전송이 불가능했지만, 그 기술이 접목된 위치 코드를 이용하면 특정 위치로는 전송할 수 있었다.

​의물의 추론에 따르면 고양이 톤토는 실험실의 수신부가 아니라, 전송과 동시에 에너지화된 후 즉시 우주 어디로 보내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노이즈의 고도화된 패턴으로 기록되어 남았다.

​“양자 네트워크!” 의물이 외쳤다.

​“네?”

​“네트워크야. 우주 양자 네트워크.”

​“그러니까……” 지은은 긴장했다.

​“이 패턴은 양자 네트워크의 존재와 구조를 암시하고 있던 셈이야. 우주에는 선진 외계 문명이 구축한 고도의 양자 네트워크가 깔려 있었어!”

​의물은 연구원이 가져온 수만 개의 코드를 정렬시켜 보여주었다. 수백 번의 실험 끝에 추출된 그 접속 코드를 이용하면 다양한 물질들을 코드가 가리키는 위치로 정확하게 전송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우주에 양자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있다면 각 노드에는 양자 게이트 역할을 하는 장치들이 있을 것이고 흩어진 양자 정보를 끌어당겨 정해진 곳으로 이동시키는 일이 가능해. 마치 거대한 자석처럼, 우주 저편의 특정 위치로 양자 정보를 끌어당기는 거지.”

​“제가 정리를 해볼게요. 송신 장치에 들어간 톤토는 기기적 결함 내지는 어떤 외부 조건에 의해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사라졌지만, 스캔에 성공한 양자 상태 정보는 양자 네트워크에 이끌려 어떤 특정한 좌표계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가역적이라 되돌릴 수 없다. 맞나요?”

​“응……, 그리고 그게 맞는다면, 톤토는 살아있을 수 있어. 그런 놀라운 기술력을 가진 존재라면, 도착 지점에서는 육체와 정신, 기억이 모두 즉시 재구성되도록 설계돼 있을 거야.”

​“하지만 그곳이 골디락스 행성이라는 가정이 있어야만……”

​“아, 그건 그렇겠군……”

​의물은 의자를 좀 더 지은 쪽으로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이런 가정도 가능해. 고양이 같은 큰 물체를 전송시키려는 시도가 주변의 양자 요동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 증폭된 양자 요동이 우주에 이미 깔려 있던 외계 문명의 양자 네트워크와 공명한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지. 그렇게 해서 양자 네트워크의 구조와 좌표계 정보가 우발적으로 장비에 역류하여 패턴을 지닌 노이즈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어.”

​어떤 추론이 되었든 양자 네트워크는 양자 요동을 정보 전송을 위한 통로로 활용함으로써 결어긋남을 극복하게 해줄 것으로 여겨졌다.

​연구원들이 하나둘 출근하자 그들에게 좀 더 정밀한 분석 임무가 주어졌다. 그렇게 해서 추출된 수만 개의 코드에는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양자 정보의 밀도가 극도로 높은 지점, 즉 양자 네트워크의 코어 좌표가 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그곳이 양자 네트워크를 만든 외계 문명의 위치가 아닐까 싶어.”

​의물은 확신했다. 왜냐하면, 모든 기본 코드가 그들의 행성 위치 정보를 담고 있는 자기 참조적 암호로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물은 온종일 승리의 환호에 차 있었다. 연구소에서 일한 이후로 그런 통쾌함은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실험은 이어졌고, 모든 연구원은 어느 때보다도 극도로 집중하여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남길 수 있었다.

​연구원들이 다 퇴근하고 후배 지은과 그날도 역시 놀러 온 그의 똘똘한 아들 기준이만 남았다. 기준은 여전히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고, 의물은 그때마다 쉬운 용어로 가르쳐 주었다. 호기심 왕성한 기준이를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많은 추억이 떠올랐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지켰다. 그날은 의물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의물은 이미 중대한 결심을 한 후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직접 전송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안 돼요. 선배!”

​“모든 기록은 어젯밤 꼼꼼하게 정리해놨어. 지은 씨와 우리 훌륭한 연구자들이 계속 이어줘.”

​“안됩니다!”

​“중국의 국가항천국에서 일하는 친구 대소, 지은 씨도 알지? 그이한테서 우주복 양자 데이터도 전송받았어. 보안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해제하고 데이터를 보내 30분 정도 소요되더군.”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지은 씨…… 나에겐 가정이 없어.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이 일에 모든 것을 거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이 실험의 대상으로는 내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야.”

​“선배님……!”

​“양자 네트워크가 나를 코어로 데려다줄 거야. 나는…… 계속 나겠지?”

​지은은 의물의 결심을 말릴 수 없었다. 의물은 조용히 일어섰고 기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자 통신 장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물이 마지막 커피 한잔을 마신 뒤 양자 통신 장비의 콘솔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의물의 양자 정보와 우주복의 양자 데이터가 각각 다른 파동의 형태로 시각화되었다. 의물은 두 데이터 파일을 통합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러자 프로그램은 두 데이터를 병합하면서 오류나 충돌이 없는지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우주복의 산소 공급 장치와 의물의 호흡 정보가 서로 연결되고, 우주복의 내장 컴퓨터와 의물의 신경계가 상호작용하는 프로토콜이 구축됐다. 마치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모든 정보가 하나의 완벽한 패키지로 결합되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의물은 조용히 일어서 송신 장치 안으로 들어갔다. 지은과 기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를 지켜봤다.

​전송 직전, 의물은 자신의 의식과 기억을 담은 코어를 시각화했다. 화면에는 그의 기억 조각들이 파동으로 변환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코어 데이터와 통합된 우주복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이 의물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지은과 기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물은 우주복의 양자 데이터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송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수신부엔 이미 예상했던 노이즈만 검출됐다.

​텅빈 기기 앞에서 지은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기준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아무도 없는 실험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즉시 –

수억 광년 떨어진 어떤 행성에서 우주복을 입은 차의물이 눈을 떴다. 육체와 의식과 기억은 곧바로 이어졌다. 모든 일이 양자 네트워크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의물은 거기에 서 있었다.

​의물의 눈에 보인 행성의 모습은 황량한 화성 같아 보였다. 멀리 낮은 구릉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평평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낮은 구름이 뿌연 막의 형태로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하늘을 밝게 비추는 빛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양은 존재했다. 단지 그것이 몇 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숨쉬기는 불편하지 않았고 몸 상태는 온전했다. 우주복 데이터는 완벽하게 물질화되었다. 가볍게 발을 내딛자 푹신한 흙이 발에 닿았다. 걷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곳은 분명 지구와 유사한 중력과 환경을 가진 지구형 행성이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는 물도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의물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우주복의 헬멧을 벗었다. 편안하게 숨을 들이쉬자, 차가우면서도 맑은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우주복 속에서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헬멧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살펴보았다. 안도했다. 의물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차의물은 확신했다. 그들은 친절했고, 순간이동은 성공적이며, 나는 계속 나일 것이라고……

​​

– 끝 –

위로 스크롤